바람에 휘었노라..
도동서원 솔밭에 나가 앉아 솔내음을 맡으니 선인의 싯귀가 떠오릅니다.
바람에 휘었노라 굽은 솔 웃지마라
춘풍(春風)에 피온 꽃이 매양에 고왔으랴
풍표표(風飄飄) 설분분(雪紛紛)할 제 네야 나를 부러리라
-인평대군-
은행나무도 꽤 녹음이 우거져 늠름하고, 쑥부쟁이도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습니다.
강당에 앉아 조망하는 경관은 언제나처럼 시원합니다.
강당 뒷문으로 보이는 사당 앞뜰의 모습은 액자 속의 풍경입니다.
액자 속에는 내삼문이 보이고, 내삼문 앞에는 왼쪽(즉 서쪽)에는 계단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원의 일반적인 출입규칙은 동입서출이지만, 사당의 내삼문은 서원마다 다른 즉 로컬룰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동서원 사당의 출입규칙은 동입동출이기 때문에 서쪽에는 아예 계단이 없는 것입니다.
계단의 소맷돌에는 태극과 만(卍)자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왼쪽의 태극문양은 유교시설물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리 생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른쪽의 이 문양은 절 만(卍)자 같기도 하고, 나치의 문양 '하켄크로이츠'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이 문양을 태극의 변형으로 봅니다.
북송의 염계 주돈이선생은 그의 저서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태극이 동(動)하면 양을 낳고, 정(靜)하면 음을 낳는다.
동이 극에 달하면 정이 되고, 정이 극에 달하면 동으로 돌아간다.'
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왼편 태극문양은 동(動)이요, 양(陽)이며, 하늘(天)이고 원(圓)이 되며 따라서 상위방위가 됩니다.
오른편 문양은 정(靜)이요, 음(陰)이며, 땅(地)이요 방(方)이 되어 하위방위가 되는 것입니다.
왼쪽 (안쪽에서 보면 오른쪽)은 서쪽입니다.
신의 공간에서는 사람의 공간과 좌우가 반대가 되어 서쪽이 상위방위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소맷돌은 여기서부터 신의 공간이라는 표식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계단의 중간쯤에는 양쪽에 예쁜 꽃봉오리가 새겨져 있네요. 무슨 꽃봉오리일까요?
연꽃이 아닐까요 라고 하면, 연꽃은 불교의 상징인데 어떻게 유교시설물에 버젓이 새겨져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학자들도 연꽃을 사랑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염계선생은 또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을 써서'
국화는 은일자요
모란은 부귀자요
연은 꽃 중의 군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염계의 도학(道學)이 동방으로 와서 한훤당의 도학으로 꽃피었다는 상징이 '도동(道東)'일진데,
염계를 흠모하던 김굉필, 정여창선생 등이 연꽃을 사랑함에 이상할 일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일두 정여창선생을 모신 남계서원에는 연지가 있어 살아있는 연꽃이 피고,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도동서원에는 연이 돌꽃으로 피어나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꽃보다, 도학이 동으로 와서 피어난 한훤당의 '도학의 꽃'이야말로 보이지는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요?
동물의 머리가 이렇게 중앙에 놓여 있으면, 이 역시 중앙문은 신문(神門)이기 때문에 사람은 넘지 말라는 표시라고 할 것입니다.
이 동물이 무슨 동물이냐도 여러가지로 추측할 뿐입니다.
앞에서 보면 코는 돼지 같고, 이빨은 호랑이 같으며, 옆에서 보면 양두(羊頭) 같아 보이고, 뒤에서 보면 거북이 같아 보여,
모습만으로는 무슨 동물인지 종잡기가 어렵습니다.
이 조각을 새긴 분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셨고 지금 인터뷰도 할 수가 없는 전차로,
이 동물 역시 상상의 동물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고,
각자 보이는 대로 보시면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