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사야가
어제는 일본손님 두 그룹이 녹동서원을 찾아왔습니다.
오전에 방문한 구마모토현의 현의원 일행은 녹동서원과 사야가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소시에서 '사야가연구회'를 결성하여 사야가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였고,
일행 중 한 분은 이곳을 15번 정도 다녀갔으며, 안중근의사에 대한 연구도 하면서 하얼빈과 뤄순도 물론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한국계 동포냐고 물어봤더니 순수 일본인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인 중의 친한파인 셈이겠지요.
사야가의 출신에 대한 여러가지 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와카야마의 사이카슈설이 유력한 설이라고 했더니,
이 분들은 오카모토에치고노가미설 즉 사야가가 구마모토의 아소케(阿蘇家) 출신이 확실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돌아갔습니다.
오후에는 공교롭게도 오사카 와카야마 등 간사이지방의 여행단이 찾아왔습니다.
이 분들에게 사야가의 출신이 어디인 줄 아느냐 물어봤더니, 당연히 '와카야마'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도 지방색은 확실히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 그룹 모두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고 하여 서원까지 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특히 조선의 교육기관 체제와 에도시대의 교육기관 체제가 거의 똑같았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유학의 전래과정을 자세히 들려줬더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들 하였습니다.
한국의 서원에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는 공자의 행하지교(杏下之敎) 즉 학문의 장소를 상징하는 것이며,
일본의 성곽들에 많이 심어진 은행나무들은 군사들의 양식으로 쓸 은행열매를 따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에는 상당히 놀라워하는 듯했습니다.
또 사람의 공간인 강당에는 단청이 없고, 신의 공간인 사당에는 단청을 하여 화려하게 장식하며,
이런 형태는 불교사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설명을 들었노라 했습니다.
한일우호관 앞의 이 조형물에 관심을 보이길래 물어봤더니,
이 고양이가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네키네코(招き猫)라는 것은 다 아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왼손을 들고 있는 것은 사람을 부르는 것이고, 오른손을 든 것은 재물을 부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양손을 다 들면 욕심쟁이라는 것까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네키네코가 들어앉아 있는 주머니가 한국의 전통 복주머니이며,
한국의 복주머니 속으로 일본의 마네키네코가 들어와 있는 이 조형물은 곧 '한일우호의 상징물'아라는 것을 설명해 주니,
얏빠리(역시)를 연발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아무튼 녹동서원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사야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으며,
적어도 혐한 내지 반한감정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