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넘어 바다건너

아, 그 섬 보길도!

깊은 강 흐르듯이 2018. 11. 8. 22:13


2018. 11. 7. 늦은 오후,

카페리를 타고 보길도로 향합니다.

오래전에 보길도를 가려고 해남 땅끝까지 왔다가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급히 차를 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보길도는 언제나 아쉬움의 섬으로 남아 있었는데, 십 수년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 같이 왔고, 중학생이었던 둘째가 지금은 서른이 넘었습니다.



2018. 11. 8.

고산 윤선도선생은 삼전도의 굴욕에 크게 낙담하여 모든 벼슬을 버리고 제주도 은거를 결심합니다.

도중에 이 보길도를 들렀고 이곳 풍광에 매료되어 그만 눌러살게 됩니다.

동천석실이 건너다보이는 이 언덕배기에 터를 잡아 낙서재(樂書齋)를 짓고 거북바위(龜岩)에서 달구경을 하였다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고산은 작고할 때까지 이 낙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니,

주옥같은 시가들이 여기서 탄생합니다.

세월을 넘어 우리 귀에 익은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이 그것이며,

송강, 노계와 함께 고산은 조선의 3대 가인(歌人)으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낙서재 아래의 물도랑이 굽이치는 곳에 곡수당을 짓고, 곡절많았던 지난날을 돌아보았을까요?

왕희지의 流觴曲水(유상곡수) 一觴一詠(일상일영)이 생각키우는 이름입니다.



세연정(洗然亭)은 경회루를 연상시킨다는 이가 있습니다만,

경회루같은 권위적인 중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아한 기단의 정자를 중심으로 연못과 바위, 송죽이 여유롭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중국에서 도학(道學)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북송의 염계 주돈이는 그의 저서 "愛蓮說(애련설)"에서 말하기를

  菊花之隱逸者也(국화지은일자야: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

  牡丹花之富貴者也(모란화지부귀자야: 모란은 꽃 중의 부귀자요)

  蓮花之君子者也(연화지군자자야: 연은 꽃 중의 군자이니라)

라고 하여 연꽃을 가장 사랑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 연지에는 고산의 연꽃 사랑이 담겨 있을 터입니다.



세연정을 감싸도는 연지(蓮池)에 바위.섬이 툭 툭 툭 들어앉은 모습이 고산의 마음(心)일까요?

풍상에 기울어도 끝내 쓰러지지 않는 이 고목은 윤선도선생의 화신일까요?

  바람에 휘었노라 굽은 솔 웃지마라

  춘풍에 피온 꽃이 매양에 고와시랴

  풍표표(風飄飄) 설분분(雪紛紛)할 제 네야 나를 부러리라

인평대군의 시조가 다시금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섬, 선인들의 족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실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이런 포즈가 되었습니다.



그 섬을 뒤로하고 배는 길게 물살을 가릅니다.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