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각사와 일연국존
초겨울에 날을 잡아 인각사를 찾았습니다.
옥녀봉 아랫자락에 깎아지른 절벽이 학소대이며,
기린이 이 곳에 뿔을 얹었다는 전설따라 인각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국민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삼십리가 넘는(13Km) 여기까지 걸어서 소풍을 왔더랬습니다.
지금은 자동차도로가 나 있지만,
그 때는 오솔길로 재를 넘고 돌다리로 내를 건너 삼십리를,
그것도 고무신 신고 예까지 오려면 아마도 대여섯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소풍은 즐거웠습니다.
그 때 그 학소대는 지금도 그대로건만,
그 때 그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었습니다.
경내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절 마당의 석재 유구들입니다.
일대에서 발굴된 옛 절집의 초석 등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당시의 절의 규모가 대단하였음을 말해 줍니다.
인각사 하면 일연국존과 삼국유사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깨어진 청석돌 비석 조각이 모셔져 있는 보각국사비각이 보입니다.
왕명에 의해 이 비석이 세워졌고,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비석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려진 일이지만,
지금 알아볼 수 있게 남아 있는 것은 몇 글자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동전을 자꾸 저렇게 비석에다 던지면 마모가 더욱 심해질 텐데,
이런 일은 좀 자제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왼쪽의 부도 즉 사리탑이 '보각국사정조지탑'이고요,
오른쪽의 불상이 '인각사석불좌상'입니다.
역시나 석불의 코가 다 떨어져 나간 것이 참..
저렇게 해서 낳은 아들들, 작금엔 아들만 둘이면 재앙이란 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인각사의 주전각인 극락전 앞에는 고려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탑 앞의 배례석과 제단의 모습도 특이합니다.
탑 뒤에는 석등이 있을 자리에 노반(爐盤, 일명 관솔대)이 있는 것도 흔치 않은 모습입니다.
하단부의 복련(覆蓮)과 상단의 앙련(仰蓮)이 가지런하긴 하지만, 기계냄새가 납니다.
극락전 앞에서 답사팀 전원이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아담한 산령각..누군가가 '귀엽다'라고 하네요.
'일연학연구원' 전서(篆書)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만,
무슨 연구를 얼마나 해 놓았는지 좀 봤으면 좋으련만...
국사전은 보각국사를 모신 전각으로 보이는데..
주전각인 극락전보다 더 웅장해 보이는 것이 좀 어색합니다.
내부에는 '일연보각국사진영'이 봉안되어 있는데..
너무 깨끗하여 진짜 진영같아 보이지가 않습니다.
우측면의 진영도 마찬가지로 깨끗합니다.
모두 2002년에 그린 것으로 안내되어 있네요.
아마도 진영을 모사했겠지요?
오래된 기왓장에도 또 하나의 연륜이 보태지는군요.
언제나 이곳을 다시 오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