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주문과 선례후학(先禮後學)
환주문은 도동서원의 본래의 정문이었다.
현재는 수월루 아래의 외삼문이 도동서원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으나,
수월루와 외삼문은 조선 후기에 증축되었던 것인데, 그나마 소실되어 현존건물은 1973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따라서 1604~5년 도동서원이 재건될 당시에는 이 환주문이 정문이었던 것이다.
정문이라면 크고 웅장한 것이 상례이지만 이 환주문은 작고, 낮게 만들어져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특히나 의관을 갖추고 이 문을 들어가려면 허리를 굽혀 몸을 낮추어야 했을 것이다.
즉 자동으로 절을 하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환주문(喚主門)은 '주인을 부르는 문'이라는 뜻인데,
마음 속의 주인을 불러 예를 갖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환주문을 들어서면 학문을 닦는 강학공간이니, 학문을 하기 전에 먼저 예의를 갖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을 여기서는 '선례후학(先禮後學)'이라고 하며, 예를 먼저 배우고 학문은 그 다음이라는 뜻이다.
이 뜻을 조금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인성교육이 먼저이고, 지식교육은 그 다음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 황폐화되고, 사도가 무너져가는 현대의 교육현실에 대하여,
이 환주문이 주는 선례후학의 정신은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계단 입구의 좌우 소맷돌에는 태극문양과 꽃봉오리 문양이 예쁘게 조각되어
있다.
이 또한 사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발아래로 이끌어서,
"계단조심", "Watch your step!"을 알려주려는 배려인지 모른다.
문의 발아래 받침돌에도 커다랗게 꽃봉오리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이를 감상하려면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고 아울러 자신의 매무새도 다시 살피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낮은 문과 함께 선례후학을 실천하는 자동화시스템이다.
지붕에도 선비의 상투를 닮은 절병통을 얹어 놓은 것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예"를 실천하기 위한 공간인 '작은 문'의 생각이 일본에서는 아주 극단화되어 나타나는데,
일본의 전통 다실의 '니지리구치'가 바로 그것이며, '기어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 문의 크기는 가로 2자(약 60cm), 세로 2자2치(약 66cm) 정도이다.
문앞에 있는 섬돌(구쓰누기이시)위에 쪼그려 앉아서 문지방을 양손바닥으로 짚고,
머리부터 문안으로 넣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 이 문의 통행방법이다.
이것이 '청정무구', '무념무상'의 세계인 다실로 들어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가 무가사회를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그 "무념무상"이라는 말에 어쩐지 으스스한 생각이 든다.
머리는 문 안에, 몸은 문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