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도동서원

단풍대목의 포럼과 답사

깊은 강 흐르듯이 2021. 11. 6. 20:54

도동서원은 아침부터 북새통입니다. 주차장은 물론이고 도로변과 마을앞 안전지대까지 차량들이 들어찼습니다. 은행나무 주변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수월루 보수공사 현장에는 기계들이 윙윙거립니다. 그래도 노거수는 말없이 늠름하기만 합니다. 단풍은 이제 80%정도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분들은 내일이라도 나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 비가 예보되어 있는 바, 조용히 비만 내리면 모르겠지만, 바람이라도 좀 심하게 불면 졸지에 그야말로 추풍낙엽이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중정당에는 묘제행사로 제복을 입은 제관들이 둘러앉았고, 고직사에는 음복상들이 들락날락합니다. 오늘 해설의 주제는 당연히 서원의 제향기능이 서원문화의 발달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한국의 서원이 굳건히 지켜온 서원의 제향문화는 서원을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해 주었고, 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넘어 '인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오전의 도동서원 방문객들은 이런 제향문화의 현장을 가감없이 지켜볼 수 있었고, 때마침 열려 있는 사당 안을 둘러보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사당에 들어온 상당수의 방문객들에게는 엄숙한 공간임을 주지시키고, 경건하고 정숙한 관람을 당부하는 한편 간단한 몇 꼭지의 해설을 해 주었습니다. 질서는 잘 유지되었고 사람들은 흡족해했으며 문제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제 참석했던 학술대회를 소환해 봅니다. 서원의 빗장풀기의 일환으로 사당의 개방가능성을 질문하였던 바.."사당을 어린이놀이터로 만들 수 없다"는 어느 교수의 참으로 무시무시한 답변만 고급호텔의 대리석벽면에 울려퍼지는 광경을 목도한 바 있습니다. 트로이 유적의 존재를 확신하고 발굴을 추진하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독일 고고학회에 갔을 때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싶었습니다.

일주일 뒤 금요일(11/12)에는 비슷한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또 열렸습니다. 지난 주 회의가 '보존과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사후 수행하기로 한 '약속의 이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맞춰졌습니다. 이 발표회장과 태국, 중국, 일본의 발표자들과 화상으로 연결되고 통역을 통한 회의가 이뤄졌습니다. 세상 참 편리해지기는 했고요, 등재는 되었지만 향후 수행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음도 확인했습니다.

다음날인 토요일(11/13)에는 전날 포럼 참석자들의 도동서원과 남계서원 답사가 있었습니다. 09시부터 도동서원을 방문하여 알묘, 해설,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설 또는 토론 시간에 세계유산 도동서원의 보존과 활용에 대하여  몇가지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수월루의 번와 및 단청까지 한 지가 11년 밖에 안 되었는데 또다시 지붕보수를 하고 있는 점, 상당기간 관리인이 없어 도동서원의 관리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점, 서원 내의 중요한 개별유물들(예, 신도비, 사당벽화, 환주문과 절병통 등)의 국가문화재 지정관리의 문제, 그리고 세계유산이 된 도동서원의 국보승격 등의 지적 및 적극 검토를 건의했습니다. 아울러 일주일 전 포럼에서 무안을 당했던 사당개방 문제에 대하여 제한적인 그리고 통제된 개방이라는 진의를 강조하는 한편, 향촉대의 공식화라던가 입장료의 수수 등 '관리의 정상화를 위한' 수익의 창출방안도 검토가 절실하다는 점도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자리에 대구시나 달성군의 관계자는 일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날 고급호텔에서의 포럼에는 가오다시를 했던 분들이 말입니다.

그리고, 중정당기단 보수공사를 하면서 분실했던 용두상을 원위치할 수는 왜 없었을까? 또 세호상 주위의 세면몰타르 떡칠은 제거하고 본래의 깨끗한 모습을 되살릴 수는 왜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던 바..누군가가 '보수'공사와 '복원'공사는 개념부터가 다르고, 하는 사람도 다르며, 비용도 엄청 차이가 있다는 좀 장황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나 봅니다.

또 있습니다. 안내판의 그림(주차장앞, 부스외벽, 강학영역, 제향영역)이 실제와 다르고 번호가 잘못 붙어 있는 곳도 있는 것을 지적해 보여줬더니, 이런 것은 고쳐야 한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군청으로 수정지시가 떨어지면, 또 도동서원해설사들 너무 별나서  가만 못 두겠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