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의 사랑법
무소유의 걸음걸이로 낙엽쌓인 산길을 접어듭니다. 얼마 가지도 못하고 무인공산(無人空山)의 벤치에 앉아 만리장천(萬里長天)을 바라봅니다.
산은 온통 나목의 군상이 어우러져 신록과 초록 단풍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찬란했던 기억들은 뒤로하고,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북풍한설을 견뎌야 다시 새잎을 움틔울 수 있다는 것을 나무들은 압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남의 옷을 벗길 줄만 알았지, 자신도 (가식의) 옷을 벗어야 같이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군상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총중에 언제부터인가 사랑이 너무 깊어져 헤어지지도 떨어질 수도 없는 나목의 커플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리지(連理枝)라고 하던가요? 껍질은 뭉개져 벗겨지고 물관이 붙어서 서로의 자양분을 공유하고 상생하며 오래오래 사랑을 키워갈 것입니다. 남의 가죽은 벗기려 들면서, 자신의 허물은 벗지 못하는 사피엔스는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한나무가 되어버린 이 거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마도 오랜 세월이 흐르기 전에는 다른 개체가 연리지가 되고 이제는 한몸이 되어, 따로 또 함께의 기억은 희미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개의 사랑이 녹아 하나의 위대한 사랑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당현종의 명을 받은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를 지었습니다. 그의 진심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의 아름다움은 천고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몇 귀절을 써 봅니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 있으면 비익조가 되고 싶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있다면 연리지가 되고 싶었는데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 땅 장구해도 다할 때 있으련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내 한은 면면히 끊어질 기약 없어라
그토록 간절히 원했건만, 애욕의 껍질을 벗지 못했던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비극의 결말을 맞게 되는데요..
연리지의 사랑법을 터득한 자 생명을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 파멸을 면치 못하리니...
**장한가의 한 구절 '천장지구(天長地久)'를 제목으로 한 영화가 4편정도 있는데요(유덕화, 오천련 등 주연), 사극(史劇)인 줄 알고 봤더니 모두 현대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