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도동서원

새해 새날 도동서원

깊은 강 흐르듯이 2022. 1. 1. 10:51

위대한 세계유산 도동서원에도 임인년 새해 새날은 밝았다!

은행나목에 비치는 새해 아침 햇살

나는 왜 새해 첫날 이른아침에 도동서원에 오는가?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토요일은 언제나 도동서원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겠다고 불특정다수의 시민들과 약속을 했다. 올해의 새해 첫날은 토요일이다.

증우의정시문경공한훤당김선생신도비 비각

토요일이 아닌 날은 내가 아닌 다른 해설사가 또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수월루에 비치는 햇살

그런데 불과 며칠 전에 일이 틀어졌다. 혹한기인 1-2월에는 토.일요일만 도동서원부스를 열기로 했다는 통보가 왔다. 그 결정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통보를 한 사람은 대구시관광협회 담당자일 것이다.

환주문과 절병통 그리고 보물담장

도동서원은 대구시의 유일무이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도동서원 해설사 절대다수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대구시내의 모든 해설사부스가 문을 닫아도 도동서원만큼은 열어야 한다고 했다. 혹한기 두 달동안 단 한 사람의 방문객이 해설을 신청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매일 부스를 열고 그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세계유산의 자부심이자 의무라 할 것이다. 협회에 재고를 요청하니 해설사사업의 지방이양, 예산의 축소, 단위 활동비의 인상 등의 이유로 손톱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중정당, 상지, 정료대, 다듬은 돌 허튼층 기단

그런데, 세계유산도 아니고, 국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도 아니면서..알 수 없는 이유로 해설수요도 턱없이 적은 부스가 동절기에도 매일 문을 여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귀수(龜首:돌거북)

개인적으로는 나이 이제 70이 되면서 한겨울에 어찌 쉬고 싶지 않겠는가? 대의적 차원에서 세계유산 도동서원은 1년 365일 국내외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부스 해설사들 모두의 지론이다.

용두(龍頭:용머리)

오늘 새해 첫날인데도 오지게 3팀의 해설을 했다. 기록에 오른 것은 3팀이지만 해설 중에 합류하고 이탈하는 그룹을 합하면 족히 10팀은 넘을 것이다. 다녀간 총인원은 100명이 훨씬 넘는다. 이 추운 날씨에.. 도동서원에는 출입인원계수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가 매일 추정한 숫자와 별반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계수기가 설치되어 있는 어떤 부스에서는 방문객이 너무 없는 날에는 사무직원이 나와서 계수기 앞을 팔짱끼고 왔다갔다 하여 숫자를 부풀리는 일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세호(細虎)

작년에 동료해설사 한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해설 듣는 사람 전원 명부를 작성하게 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전원 적으라고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물론 미리 적은 사람에게만 해설을 하면 되겠지만, 해설 중간에 합류해서 듣는 사람이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추가로 명단을 작성하고 가도록 권고하지만 듣고는 그냥 가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설 도중에 이탈하는 사람마다 붙들고 명부를 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명부에 적힌 사람 수만 해설인원수로 해설일지를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 해설 인원수의 3분의1정도 밖에 기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날들은 명부와 일지에 적힌 인원수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해설인원수는 있는데 명부는 아예 기록되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명부는 사문화된지 오래다. 나는 오늘도 사문화된 명부에 적힌 숫자를 계산하느라 부산을 떤다. 나는 바보인가? 등신인가?

신의 정원..배롱나무와 모란

외국인 여성 방문객이 버스가 몇 시에 오느냐고 어눌한 한국어로 물어본다. 오늘은 버스가 오지 않는 날이라고 하니..버스정류장에 왜 버스가 오지 않는지 황당해 한다. 버스는 장날(5, 0일)에만 오고, 버스가 안 올 때에는 버스요금으로 갈 수 있는 택시가 있고, 그 티켓을 내가 끊어줄 수 있다고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힘들여 설명을 하니 그제서야 안심을 한다. 티켓을 쥐어주고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러 주니 연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갔다. 

신국(神國)의 계단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부스는 닫혀 있고, 아무도 없는 날이면 이 관광객은 허허벌판의 버스정류장에서 얼마나 기다리게 될까? 그리고 그 외국인이 다시 대구를 찾아올까? 세계유산은 세계인 누구나 오고가기에 불편하지 않게 해 줄 의무가 있지 않을까?

신문(神門)지킴이

새해 첫 근무부터 고심이 된다. 이 자잘한 이야기를 공개해도 될까? 곤란해지는 사람이 없을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안이 개선이 되기는 할까? 요새 사람들은 통이 커서인지 큰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 전세계적인 코로나사태, 동서냉전의 격화문제, 양안문제, 한일관계, 한중관계, 남북관계, 지구온난화문제까지..국내정치는 전국민이 9단을 넘어 입신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