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총림 동 화 사

나는 청산의 학이라..

깊은 강 흐르듯이 2024. 3. 25. 18:12

"영남치영아문" 임진왜란 당시 동화사에 설치된 승군의 지휘소,

지휘관은 사명대사였다.

임진정유 양왜란이 끝나고, 1604년 선조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 사명대사를 마주한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언절구 한 수를 읊었다.

(석상난생초) 돌 위에서 풀이 살기 어렵고
(방중난기운) 방안에서 구름이 일 수 없다.
(여미하산조) 그대는 어느 산의 새이길래
(내참봉황군) 봉황의 무리에 들어왔는고?

(아본청산학) 나는 본시 청산의 학이라
(상유오색운) 늘 오색구름 위에서 노는데
(일조운무진) 하루아침에 운무가 걷히더니
(오락야계군) 잘못되어 꿩의 무리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도쿠가와는 과연 영웅이 호걸을 만났다며 크게 웃었다.
사명대사는 포로 3,000여명을 구출하여 돌아왔다.
한일외교교섭역사상 전무후무한 놀라운 성과다.
이후 250년간 한일관계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졌다.
사명대사는 승려요, 장수요 외교관이었다.
팔공산과 동화사는 호법과 구국의 성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