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도동서원

은행나무와 행하지교(杏下之敎)

깊은 강 흐르듯이 2013. 1. 11. 17:53

 

도동서원의 전신인 쌍계서원은 1568년에 비슬산 기슭의 쌍계리(DGIST 자리 부근)에 세워졌으나,

 정유재란 때인 1597년에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은 것이 1604~5년이었습니다.

그리고 1607년에 임금님으로부터 사액현판을 하사받게 됩니다.

사액(賜額)"액자를 하사한다."는 뜻으로 사립교육기관의 정식인가 절차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사액을 기념하여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은행나무를 심었을까요?

서원은 옛날의 학교이며, 여기서 가르치는 학문은 유학이었습니다.

유학의 시조인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학을 할 때에,

은행나무(중국에서는 살구나무라는 설도 있다) 아래의 단(壇)에서 하였다고 해서 이를 행단(杏壇)이라 부르고,

공자의 가르침을 행하지교(杏下之敎:은행나무 밑의 가르침)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서원이나 향교 등에 학문의 상징으로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다른 서원이나 향교 등에도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성에 공교롭게도 이 나무와 꼭 같은 해에 심어진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구마모토성(일본의 3명성 중 하나)에 가 보신 분, 그리고 은행나무 보신 분 있으세요?

그리고 일본의 3명성이 어디어디죠?

일본의 3명성은 나고야성, 오사카성, 구마모토성입니다.

그 기이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쌍계서원이 불태워진 정유재란 당시 조선침략에 선봉을 섰던 일본장수 중에 가토키요마사가 있었습니다.

그 가토키요마사가 일본에 돌아가서 축조한 성이 바로 구마모토성입니다.

그 구마모토성이 완성된 것이 공교롭게도 1607년이었고, 그 완공 기념으로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또 하필이면 은행나무를 심었을까요?

(구마모토성의 안내책자에) 열매를 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열매는 군사들의 양식으로 쓰이는 것이었지요.

똑같은 나이의, 똑같은 은행나무이지만,

한 나무는 학문의 상징이고, 한 나무는 전쟁의 상징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