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2월 24일(음) 양력으로는 3월 30일입니다.
봄은 무르익어 무슨 넝쿨이 향나무를 타고 하늘로 오릅니다.
오늘도 수월루 너머 하늘은 뿌옇게 보입니다.
환주문 앞 화단에는 민들레가 고개를 길게 내밀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담쟁이 넝쿨에서도 새싹이 돋아납니다.
모란도 꽤나 봉오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외삼문 안쪽에 자리가 펴져 있는 걸 보니, 오늘이 도동서원 춘계 향사(享祀) 입재(入齋)날인가 봅니다.
동서재 굴뚝에선 군불 지피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중정당 뒷뜨락에도 연기가 뭉게뭉게 하늘로 오릅니다.
늘 닫혀 있는 사당 문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제관들이 중정당에 모여 집사분정(향사의 여러 임무를 제관들에게 배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 써진 제집사분정기(諸執事分定記)가 게시되고 향사의 절차가 진행됩니다.
축문(祝文)과 홀기(笏記)도 작성합니다.
전사청에서는 음복(飮福)상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분정을 마친 제관과 참가자들이 같이 음복을 합니다.
음복을 다 하고 제관들이 직접 음복상을 전사청으로 날라 줍니다.
실제 향사는 내일(2/25:下丁日) 인시(寅時:3~5시 사이)에 지내게 될 것입니다.
본래 이곳 도동서원의 춘계향사는 중정일(中丁日)인 2월 15일이지만,
그 날이 영조비 정성왕후의 국기일(國忌日)이라 향사를 하정일로 미루어 지내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국기일을 무시하고 서원향사를 지내는 곳들이 있음을 유사와 담화하니,
도동서원은 지키는데까지 지켜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보니 입재시간이 지나도 서원 문을 닫지 않고,
전사청을 기웃거리는 관람객들에겐 떡도 하나씩 나눠 주고 합니다.
서원도 조금이나마 열린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좋아 보입니다.
귀로에는 벗꽃이 만개하였고, 멀리 비슬산 정상은 희미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