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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도동서원

도동서원 사액년도 등에 대한 논란

by 깊은 강 흐르듯이 2013. 1. 16.

수 신 : 수신처 참조

참 조 : 관광 및 문화재 담당부서

제 목 : 도동서원 안내판의 표기 오류 정정 등 (요청)

귀 기관의 발전을 기원하오며, 도동서원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축하합니다. 차제에 도동서원 안내판 등에 주요한 오류가 발견되고 있어, 관련 자료를 첨부하여 정정을 요청하오니,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향영역에 설치되어 있는 분축시설물(坎 또는 次)의 명칭에 논란이 있사오니, 이를 공식적으로 규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첨 부 : 1. 도동서원의 설립년도와 사액년도 표기 오류의 건 1부

2. 도동서원의 분축시설물의 명칭에 대한 논란의 건 1부. 끝.

2012. 2. 8.

대구 동구 신천3동 화성파크드림이스트밸리 103동 1602호

대구광역시문화관광해설사 박이달

(전화 : 010-3535-5545)

수신처 : 달성군수, 대구광역시장, 문화재청장, 국가브랜드위원장

첨부 #1

도동서원 설립년도와 사액년도 표기 오류의 건

도동서원 종합안내판에 표시된 서원의 설립년도(1604년)와 사액년도(1610년)가 문화유산 실물에 표시되어 있는 설립년도(1605년) 및 사액년도(1607년)와는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달성군(관광문화재과)에서는 새로나온 『문화재대관』에 의거하였다고 하나, 아래와 같은 현장의 근거자료에 의거하여, 설립년도와 사액년도 표기가 정정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 아 래 ***

도동서원의 종합안내판(2011년 설치)에는 설립 1604년, 사액 1610년으로 표기되어 있고, 

 

이 종합안내판으로부터 20여미터 떨어져 있어 바로 건너다보이는 버스정류소의 안내판 두 곳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설립(또는 재건) 1605년, 사액 1607년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방문객들의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1605년 재건, 1607년 사액으로 표기된 버스정류장 벤치 뒷벽 안내판

 

1605년 설립으로 표기된 버스정류소 옆 ‘달성군 관광 안내도’의 ‘주요관광지 안내’

이와 관련된 실물 자료를 보면,

 

강당 처마의 기와 막새에 萬曆33년(1605년)으로 건축년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강당의 중앙마루 뒷벽에 걸려 있는 사액현판에는 萬曆35년(1607년)으로 새겨져 있어서, 도동서원의 사액년도는 1607년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강당 앞 처마 밑의 퇴계선생 필적 집자현판 아래에 한강 정구선생의 수서(手書)가 걸려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아서 이 또한 도동서원의 사액년도가 1607년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寒岡鄭先生手書

이 선생(퇴계)께서 항상 김선생(한훤당)의 서원을 세우는 일에 간절한 뜻을 두고 계시다가, 아깝게도 선생의 생존시에 미처 서원 10개소의 수를 채우지 못하였다. (퇴계 문집 가운데에 십개소의 서원을 읊은 시가 있는데, 다만 아홉 서원만 있고 열 서원은 갖추지 못하였다) 만일 그 때에 계셨더라면 친히 현판을 쓰시기를 무엇보다도 먼저 하셨을 것이다. (여러 서원의 현판 가운데 선생이 쓴 것이 많다) 이제 서원이 거듭 새로워지고, 道東이라는 훌륭한 명칭이 궁중에서 내렸으며, 현판을 나라에서 내려 보내실 때에, 마침 또 선생께서 쓴 액자 중에서 道東書院 넉자의 큰 글씨를 얻어서 모하여 새겨서 서원에 보냈다. 先師의 옛 글씨와 임금께서 은총으로 주신 것이 장차 안팎으로 서로 빛날 것이니, 행여 학자들이 존숭하며 본받을 바를 알게 할 것이며, 또한 이 선생의 남긴 뜻을 성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랴? 무릇 서원에 들어오는 우리 선비들은 서로 함께 瞻仰하고 사모하여 깊이 道東의 뜻을 잘 알아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그 뜻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을 어찌 생각하지 아니하랴?

萬曆丁未秋七月 宣祖四十年丁未(1607) 後學西原鄭逑謹書

 

첨부 #2

도동서원의 분축시설물의 명칭에 대한 논란의 건

 

도동서원의 제향공간인 사당의 담장에는 향사 후 축문을 태우는 시설물이 있고, 이곳에서는 이를 감(坎)이라고 부르는데(이호일, 『조선의 서원』, 195쪽), 한편 이것을 차(次)라고 부른다는 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220~222쪽)이 있어 방문객과의 사이에 자주 논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책임 있는 기관의 확실한 고증을 통한 규명이 필요합니다.

 

2004년 춘향제 당시 분축(焚祝) 모습 ▲

 

도동서원의 사당 담장에 설치되어 있는 분축시설물인 감(坎)(혹은 차(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