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 추녀 아래 남천의 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맺혔다. 오늘이 고3생들의 수능시험날이다.
아침일찍부터 용연사에는 쉴새없이 차량들이 밀려 들어온다. 평일에 이렇게 방문객이 몰리는 것은 아마도 이 수능대목이 최고점일 것이다.
고득점 원만합격을 위하여 100일을 기도해 왔다. 아니 학교라는 곳을 들어가서 오늘까지 4,300여일을 오늘 하루를 위해 정성을 다해 왔는지도 모른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적멸보궁 마당에는 학부형들이 줄을 서서 참배를 기다리기도 하고, 삼삼오오 둘러모여 얘기들을 나누는 표정들이 진지함을 넘어 살벌하기까지 해 보인다. 붉게 물든 단풍이 피땀의 결정처럼 보인다.
은행나무는 이제 노란 잎들을 털어내고 엄동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나목의 가지들 사이로 겨울바람이 찾아와 추녀의 풍경을 울리면 절간의 겨울은 더 깊은 적막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오늘 최선을 다하며 후회없는 하루를 보내고,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털고 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하자.
천왕문의 사천왕상 앞에 매달린 소원들도 대부분이 수능대박이다.
극락전 앞의 오래된 삼층석탑에도 어김없이 소원패찰들이 바람에 날리며 풍경을 두드리고 있다.
초겨울 잔잔한 연못의 데칼코마니가 신선하다.
입시의 계절이 되면 절간 부처님에게 합격을 빌고 앞다퉈 시주를 하는 것을 두고, 불교의 지나친 기복신앙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산 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던 불교가 산문을 열고 대중에게 그만큼 다가가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교의 공자님 사당에 참배하고 합격의 소원을 빈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공부의 신을 모신 서원의 사당에 알묘를 하고 고득점 합격을 기원하면 서원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인가? 향교와 서원들도 빗장을 열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쇠퇴의 길을 걷게될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대구지역에 사찰전문해설사 50여명이 양성되어 있는데, 20~39세의 청년일자리창출사업의 일환이라고 들었다. 이 사람들에게 지급될 일년 예산은 4천만원이라고 하는데..1인당 1년 80만원, 한달 7만원짜리의 일자리 가지고 어찌 먹고 산다는 말인지 참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다. 전국으로 보자면 천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된 것으로 통계에는 잡혀 있을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졸업해서 기다리는 일자리가 이런 것일 줄 오늘 수능시험 보는 학생들은 제발 몰라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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