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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도동서원

혹한기의 보수공사

by 깊은 강 흐르듯이 2022. 1. 8.

새해의 두 번째 토요일, 다시 위대한 유산을 마주한다.

수월루에서 바라보는 은행나무

수월루에 올라 사방을 조망한다. 늘 그렇긴 하지만 오늘 보는 이 도동서원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이 더욱 아름답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중정당, 환주문 거의재

수월루 왼쪽으로 비스듬히 바라본 거의재와  환주문 중정당은 고즈넉하다.

환주문, 절병통, 중정당

정면으로 바라보는 환주문과 중정당은 단아하면서도 엄격한 품격이 사람을 압도한다.

환주문과 중정당의 지붕

절병통 너머로 줄지은 중정당 지붕의 골기와는 사막에 도열한 트로이의 군대처럼 장엄하다.

전면보수를 위해 가림막을 설치한 거인재

작년 말경에 시작한 거인재의 수술은 경과가 좋을까? 방문객이 적은 겨울에 공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진도나 품질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거인재에 제일 번성한 벌집이 좀 없어지게 했으면 좋겠다.

중정당 마루의 낙엽

월화수목금, 닷새를 방치한 중정당 마루의 한쪽 구석은 낙엽이 모여 뒹굴고 있다.

중정당 마루의 먼지

보수공사장에서 날리는 먼지가 중정당에 켜켜이 쌓여도 쓸어낼 사람이 아무도 없다. 관리소장은 몇년째 공석이고 관리소의 전화는 경비실로 옮겨놓았다. 경비실은 12/10부터 1/10까지 동계휴무에 들어가 있고, 한 사람씩 교대로 아침에 나와 서원의 문만 열어놓고 갔다가 저녁에 다시와서 문을 닫고 가는 상황이다. 해설사부스도 평일은 문을 닫았기에, 1/3~7일 닷새 동안은 도동서원으로 검색되는 전화는 응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방문객들은 응대하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래야 물어볼 곳이 아무데도 없었을 것이다. 내일 지나고 모레부터는 그래도 경비실이 근무를 재개한다고 했는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형편이 좀 곤궁한 지인에게 넌지시 도동서원 관리소장 자리가 비어 있다고 했더니, 단번에 "그거 고자(고지기) 아이가?"라고 하는 바람에 그 이상은 입도 떼지 못했다.

중정당 청소

한 길 반이나 쌓인 먼지와 낙엽을 쓸어본다. 이것도 마지막 청소일지 모른다. 달력에는 언제나 오늘 다음에 내일이 오게 되어 있지만, 나의 내일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떠야 나의 내일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가 간단명료해진다.

먼지와 쥐똥과 낙엽

쓸어모은 것들을 가만히 보니 낙엽과 먼지, 모래는 물론이고 쥐똥인지 새똥인지 모를 배설물도 엄청 많다. 이래가지고는 중정당에 오를 때 신발 벗고 오르라는 소리를 하기가 민망하다.

청소를 끝내고 뒷문에서 마루를 건너고 절병통과 수월루 지붕너머 스카이라인을 본다. 하늘이 뿌옇긴 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오늘도 4팀의 해설을 빡세게 했다. 출근 하자마자 10시부터 12시까지, 얼른 점심을 먹고 12시 40분부터 4시 50분까지 잠깐씩의 마이크 충전 시간 외에는 쉴 새가 없었다. 팀당 인원수가 적으면서 집중력이 생기면 종종 이렇게 된다. 심도있는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 적당히 하고 자르기가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해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진다.

오늘도 달성행복택시이용자가 두 사람 있었다. 이 달성행복택시라는 것은 도동서원으로 매일 들어오던 시내버스가 장날(5, 0일)에만 하루 두 번 들어오게 축소되면서 생긴 제도인데, 도동서원관광객이 버스비(1400원?)으로 도동서원에서 구지면사무소 앞까지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 물론 군에서 택시에게 손실보상을 할 것이다. 택시기사들이 홍보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근래들어 이 제도를 알고 이용권을 요구해 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도동서원해설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부수업무가 추가된 것이다. 이 이용권 발행도 처음에는 경비실에서 맡아 했으나, 연세 있으신 어른들이라 그런지 일처리가 원활하지 못하여, 해설사부스와 양쪽에서 하다가 이제는 부스에서만 이 일을 전담하고 있다.

이 달성행복택시가 생기게 된 사연이 또 생각난다. 몇 년 전인가 도동서원에 온 일본인관광객이 현풍에서 택시를 4만원이나 주고 타고 왔다고 해서 택시번호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번호는 모른다고 했다. 통상 1만원을 받으니 다음에는 택시를 탈 때 "도동서원까지 만원 맞죠?"라고 선수를 치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달성군 교통과에 전화를 했다. 전화받는 직원의 이름을 확인하고 달성군내 모든 택시사업자에게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강력한 경고조치를 해 줄 것을 건의했다. 곧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요금은 근절되었다고 했고, 얼마 후에 행복택시제도가 생겼다. 그 관광객은 단순관광객이 아닌 관광블로거였고 지금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다.

서울에서 후손 두 사람이 어제 올 계획을 세웠다가 오늘 왔다고 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해설을 듣고 갔다. 아니 듣고 갔다기보다 그 분들의 선조 한훤당에 대하여 깊은 대화를 하고 갔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지난 며칠의 평일에는 이렇게 맘먹고 찾아왔다가 실망하고 간 사람들은 없었을까? 한 겨울의 도동서원, 여기까지 온 방문객들은 목적의식을 뚜렷이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건성으로 보기보다는 뭔가 꼭 보고싶고 알고싶은 것이 있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구의 다른 여러 부스에서도 근무해 보았지만, 해설의 집중도와 효과가 도동서원처럼 높은 곳은 보지 못했다. 세계유산이 그냥 세계유산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대접은 너무 허술하기 그지없어 민망하기만 하다.

만20년을 함께 울고웃던 동료해설사 한 분이 어제 해설사의 직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그냥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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