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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도동서원

정료대(庭燎臺)와 관솔

by 깊은 강 흐르듯이 2017. 6. 8.

도동서원의 강당의 기단 위 중앙에 육각의 돌기둥 위에 사각 돌판이 얹힌 석조물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교탁? 식탁? 연단? 제단?

처음 보시는 분들은 매우 궁금해하면서,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보기도 합니다.

서원에서는 이것을 정료대라고 하며, 한자로는 庭(뜰정)燎(횃불료)臺(돈대대)라고 씁니다.

즉 마당에 불을 밝히는 등화시설물이며, 대부분의 서원에 정료대는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에 석등이 있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이 정료대의 별명이 관솔대이며 이 별명을 정료대보다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밤에 불을 밝히는데, 관솔이라는 것으로 불을 밝혔다는 뜻입니다.

관솔이 뭔지 아시는 분?

서원의 담너머로 멋진 낙락장송이 보이네요!

도동서원 주변에서 제일 잘 생긴 소나무입니다.

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지면 옹이가 되고 옹이 주변에는 많은 송진이 모여 빨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관솔이며, 이것을 쪼개어 한 쪽 끝에 불을 붙이면 송진이 계속 빨려 올라오면서 아주 오래 불이 붙어 있게 됩니다.

저희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 밤에 관솔에 불을 붙여 들고 이웃집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방의 벽에 네모난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위쪽은 그을음이 새카맣게 붙어 있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불과 5-60년 전까지 우리 생활에서 실제 사용되었던 등화용품인 것이지요.


절에도 관솔대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가까운 곳입니다.

대구 분들은 동화사 안 가 보신 분 없으시죠?

동화사의 대웅전 앞에 석등이 있죠?

???

동화사의 대웅전 앞에는 석등이 있을 곳에 이 정료대와 비슷한 석조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절에서는 이것을 노반(爐盤)이라 부르고 그 돌기둥을 노반석주(爐盤石柱)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 노반이라는 정식명칭보다는 관솔대라고 더 많이 부른다는 것입니다.

서원이나 사찰은 가정집보다는 재정형편이 좋았을 텐데도 이렇게 관솔로 불을 밝힌 것을 보면,

관솔이 생활 속에 일반화되어 있는 등화용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고전문학시간에 이런 시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희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명필 한석봉의 시조로 알려진 여기서의 '솔불'이 무엇일까요?

바로 '관솔불'을 이르는 것이겠지요?

관솔에 불을 붙이면, 즉 송진이 타면서 그을음이 많이 나오는데..

그 그을음으로 먹을 만들며, 이것이 바로 '송연묵'입니다.

송연묵은 입자가 굵어 먹을 갈 때나 글을 쓸 때 거친 느낌이 나고, 묵색은 옅으며 묵향은 아주 진합니다.

지금은 유연묵(다른 식물의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이나 화학먹물을 많이 쓰지만, 여전히 송연묵 애호가도 더러 있는 듯합니다.


이 송연묵은 약으로도 쓰였습니다.

동의보감에는 송연묵의 효능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산후혈훈(産後血暈)과 붕중하혈(崩中下血), 金瘡의 출혈부지(出血不止)를 치(治)하고, 새살을 돋게 한다."

저희 어릴 때만 해도 사람이 손발을 다치거나 하면 할머니가 가마솥 밑의 그을음을 긁어 발라 주던 기억이 납니다.

또 종기가 났을 때 바늘에 실을 꿰고 바늘은 불에 그을리고 실에는 먹을 뭍혀 종기를 따 주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그 때 사람들의 팔뚝이나 손등 같은 곳에 유난히 푸르스름한 문신 같은 것이 많다 싶었는데요,

그게 문신이 아니고요, 상처에 송연을 넣어 치료한 상흔이었던 것입니다.

소나무는 세한삼우(歲寒三友:松竹梅)의 으뜸 즉 삼우지종(三友之宗)이라 하여 옛 선비들이 사랑하였다지만,

이렇게 또 다른 여러가지 실질적인 필요성 때문에 선비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천생연분이었네요!


여기서 송죽매의 또 다른 숨은 의미를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수준별 세 그룹으로 분류하긴 해야 하는데, 대 놓고 상중하로 분류하기가 참 머슥할 때,

이를 "송죽매"로 은근히 분류하여 아는 사람만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마치 학생들의 성적을 5단계로 분류할 때 '수우미양가'로 매기는 것과 비슷하 방법이라 하겠지요.


어제는 도동서원에 많은 학생들이 다녀갔습니다.

대부분, 區.郡해설사, 학부모해설사, 특채해설사들이 해설을 맡아 해서 市해설사는 여유가 생겼습니다만... 

지나간 자리엔 안타까운 모습이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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