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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도동서원

수월루의 대보름달

by 깊은 강 흐르듯이 2020. 2. 9.

도동서원 수월루(水月樓) 추녀끝에 경자년의 대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주자가 한수조월(寒水照月)을 노래했던 것도 이맘때쯤이었을 것입니다.
恭惟千載心(공유천재심)
공손히 천 년(전 선현)의 마음을 생각하니
秋月照寒水(추월조한수)
가을 달 찬 물 비추듯이 분명하도다
魯수何常師(노수하상사)
공자가 늘 스승이 되어 주시겠는가
刪述存聖軌(산술존성궤)
다듬고 펼쳐서 성현의 업적을 보존하리라

은행나무 가지아래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공자의 행하지교(杏下之敎)를 생각합니다.


차가운 강물에 바람마저 많이 불어 달빛은 물결에 부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경자년 대보름의 한수조월은 이렇게 바람에 부서지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은 흩어지고..
쥐띠 해의 정초부터 박쥐에서 바이러스가 옮아와 인간세상을 적막강산으로 몰아갑니다.
아이러니를 넘어 불가사의입니다......


세상이 가라앉아 그런지,
묵은 해에 걸린 감기가 열흘 넘게 뻗치더니,
감기약을 두 번이나 지어먹고 겨우 콧물이 잦아들었습니다.


눈이 너무 침침하여 안과에 가니 안경처방전을 다시 끊어 줍니다.
이래저래 안경도수를 맞춰봐도 오른눈은 시력이 눈에 띄게 교정되는데..
왼 눈은 희뿌연 안개가 쉬 걷히지 않습니다.
석 달 후로 정밀검사 예약을 잡아놓고 돌아섭니다.


이가 또 욱씬거려 치과에 갔더니,
진통소염제를 며칠 먹고 다시 오라 합니다.
다시 가서 썩은 이 한개를 발치하고,
물고 있는 소케(솜)는 30분 후에 버리고,
바로 소염진통제 한 봉다리 먹으라고 합니다.
또 통증이 사라져도 3일치 약은 다 먹어야 한답니다.
뜨거운 음식은 식혀 먹으라고 합니다.
나라법 지키기도 어려운데,
병원법들 또 지키려니 곱으로 힘이 듭니다.
그래도..
손주딸한테서 메세지가 옵니다.
"보고싶어요"
"오냐, ㅇㅇ이 잘 있느냐"
"어디세요"
"할아버지 이가 썩어서 치과 가서 뽑고 집에 와 있다"
"왜 썩어요"
"할아버지 이제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뭐"
"네"
"우리 ㅇㅇ이는 이 잘 닦고 씩씩하게 놀아라"
"네"
얼굴도 안 보고 문자로 하는 단답형의 대화이지만,
시름을 잊게 하는 명약과도 같습니다.


퇴근길 다람재터널을 지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옵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10분을 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압니다.
차를 돌려 도동서원주차장으로 다시 갑니다.
경비실에서 창문을 열고 화장실 뛰어가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봅니다.
밤새 서너번을 일어났다 눕습니다.
아침에 내자가 부스럭 정ㅇ환을 꺼내 줍니다.
"나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는데.."
"있는데 왜?"
"감직어(감춰) 놨던 겨?"
"ㅎㅎ"
이렇게 같이 산 지가 올해로 40년입니다.


이렇게 경자년 벽두는 예사롭지 않게 흘러갑니다.
그래도 가는 데까지는 고요히 도도하게 흘러가야 할 텐데요..
깊은 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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