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발견된 쌍귀부 비석 중에서 온전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도동서원의 김굉필선생신도비가 유일합니다. 이 비석 이외의 쌍귀부비석으로는 경주의 무장사지쌍귀부비석, 승복사지쌍귀부비석, 창림사지쌍귀부비석과 포항의 법광사지쌍귀부비석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신라후기에 조성된 불교사찰 터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없고 쌍귀부(비석의 받침대가 두 마리의 거북으로 만들어진 것) 등 일부 유구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라시대가 아닌 조선시대의 것이며, 불교사찰이 아닌 유교서원의 비석이며, 경주지방이외의 지역에 소재하며, 유물의 일부 파편이 아닌 온전한 형태를 가진 쌍귀부비석은 이 비석이 유일한 것이라는 데에 희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연구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쌍귀부를 가만히 보면 두 거북의 몽통은 크기가 비슷하지만 한 쪽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있는 모습이고, 한 쪽은 목을 움츠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두 거북이 부부인지, 부자인지, 친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기록이 없으니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음양의 조화를 의미하는 암수 즉 부부거북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 비석은 도동서원이 건립된(1604년) 22년 뒤인 1626년(인조4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장현광이 지었고 글씨는 배홍우가 썼다고 새겨져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돌을 깍아 비석을 만들어 세운 석공의 이름을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돌의 재질이나 돌을 다듬은 솜씨를 보면 서원 내부 중정당의 기단이나 여타 석조조각품들을 제작한 그 석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아마도 그 석공은 경주지방 출신이거나 아니면 경주에 가서 많고 많은 그 곳의 석조유물들을 섭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불국사의 허튼층 석조기단을 기억하면서 도동서원 중정당의 기단면석을 깎았고, 무장사지 등 비석의 쌍귀부를 떠올리며 김굉필선생신도비의 비받침을 쌍귀부로 조각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면 너무 아마추어적인 상상일까요?
이렇듯 아주 귀중한 이 유물을 별도의 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동화사에 가면 비받침이 봉황의 모습으로 된 인악대사비가 있고,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인악대사비만큼이나 사료적 가치와 희귀성이 있는 김굉필선생쌍귀부신도비는 당연히 보물 또는 그 이상의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도동서원 사당 안의 두 점의 벽화나 중정당의 다듬은 돌 허튼층 기단 등도 별도의 문화재로 지정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또한 해 봅니다. 차제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유물들은 국내적으로도 국보로 승격을 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됩니다. 일본에서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이 된 호류사에서는 무려 2300여점이나 되는 유물들을 국보 또는 중요문화재로 지정하여 일일히 개별관리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좀 해보자고 하면 곧바로 '토***'라는 소리를 듣지나 않을까 싶은 것이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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