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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도동서원

도동서원의 문화재 명칭

by 깊은 강 흐르듯이 2018. 6. 10.


도동서원의 수월루 앞에는 도동서원의 문화재 명칭이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보물 제350호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


보물지정서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어서, 이 긴 이름의 문화재 명칭을 내방객들에게 힘들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서원 입구의 종합안내판에는 "보물 제350호 달성 도동서원 강당 사당 담장" 이렇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


그저께부터 '문화재지킴이'라는 이들이 와서 이틀을 작업하더니 이렇게 바꿔 놓았습니다.

"보물 제350호 달성 도동서원 중정당. 사당. 담장"

'장원'이라는 어려운 말을 '담장'으로 쉬운 말로 바꾼 것, '강당'을 '중정당'으로 현판에 쓰인대로 바꾼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면 표지석도 바꿔 세우고, 지정서도 새로 교부해 줘야 할 듯 한데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공식명칭도 이렇게 바꿔 놓기는 했는데...

상세 설명에 들어가니 아직 옛명칭인 '도동서원 강당사당부장원'을 그대로 쓰고 있고,

논란이 심했던 도동서원의 건립과 사액의 연도도 안내판에 쓰인 것(1604년 건립, 1610년 사액)과는 달리'

1605년 건립, 1607년 사액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제는 한 방문객이 현판과 안내판의 연도표기가 다른 이유를 물어와서, 설명을 하는데 한참의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건물 명칭에 7번 거인재, 8번 거의재로 적혀 있는데, 그림에는 거인재와 거의재 모두 7번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처음 제작할 때 그림상의 번호가 바뀌어 있었고, 이를 지적하자 수정지를 만들어 번호를 다시 바꿔 덧붙였는데,

거의재의 덧붙인 '8'자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쨋던 잘못되어 있는 것은 조속 수정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11번 '곡간채'는 '곳간채'의 잘못인데 이것도 수정을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연기가 자욱합니다.

보리끌떼기(보리를 베고 남은 뿌리 가까운 부분)를 태우고 있는 거였네요.

차폭등과 깜박이를 켜고 통과하니 감자밭이 보입니다.

강건너의 개진감자가 유명하니 여기서도 감자를 많이 재배하나 봅니다.


감자밭을 보면 또 옛생각이 나는 것은 못먹을 것(나이)을 많이 먹은 탓일까요?

지금이야 감자라고 하면 모두가 흰감자 뿐이지만, 예전 우리 어릴적에는 자주색감자가 더 많았습니다.

이 자주색감자를 '자지감자'라고 불렀는데..엑센트를 주의하여 발음해야 겠지요?

요새는 감자가 주로 반찬으로 이용되지만,

옛날에는 삶아서 식사대용으로 하기도 하였고, 밥에 섞어 양식을 늘려먹는데 쓰기도 하였기에 부식아닌 주식이었습니다. 

감자는 구워 먹는 것이 젤 맛이 있는데...


그 구워 먹는 방법 중에 '감자묻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리 베고, 모내기 하고, 감자도 알이 굵어지고, 산에 풀도 많이 자란 이맘때면,

하교 갔다온 아이들은 저마다 소를 몰고 산으로 소먹이러(방목) 갑니다.

소먹이러 가는 총중의 대장 아이가 앞산언덕에 올라가서 "오늘 감자묻이 한다"라고 크게 외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집 밭에서 감자를 캡니다.

그리고 감자의 소유권 표시를 합니다.


한 일, 두 이, 곰배 정, 열 십..이런 식으로...


산에 이르면 소 이까리(고삐줄)을 목이나 뿔에 잘 감아서 풀리지 않게 단단히 묶어서 놓아 주면 저희들끼리 뭉쳐다니며 풀을 뜯습니다.

이렇게 소를 놓아 주고는 대장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감자묻이 작업이 시작됩니다.

흙이 좋은 땅을 골라 구덩이를 팝니다.

자갈돌들을 모아와서 구덩이의 바닥에 깔고 벽에도 붙여쌓고 지붕까지 원형으로 쌓는데는 상당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물론 불을 땔 아궁이는 만들어 둬야 되겠지요?

마른 나무를 모아서 불을 땝니다.

돌이 발갛게 달아오르면 지붕의 돌을 조심조심 걷어 두고 숯과 재를 제거합니다.

달아 있는 자갈 구덩이 속에 감자를 모두 모아 집어넣고 걷어 두었던 지붕돌들을 위에 덮습니다.

그위에 미리 베어다 뒀던 공깃대(야관문)를 덮고, 그 위에 다시 구덩이를 파 내었던 흙을 덮습니다.

마치 잔디를 심지 않은 묘지처럼 보이겠지요?

흙 위에 약간의 물을 뿌려 주기도 하는데..이것이 대장의 고유권한이자 최고의 노하우입니다.


그래 두고는 한 동안 남자아이들은 짱꼴라(재기)차기를 하거나 꼰을 두기도 하며 놉니다.


(도동서원 중정당 우물마루 틀에 새겨진 꼰판-이거 누가 이랬을까?)   

여자이이들은 빤돌(공기)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대장이 명합니다. "공깃대 함 빼봐라"

공깃대가 누렇게 잘 익었으면 감자도 잘 익은 것입니다.

흙과 공깃대 지붕돌을 걷어내고 익은 감자를 하나하나 꺼냅니다.

"한 일"

"내 꺼"

"두 이"

"내 꺼"

.

.

이렇게 해서 둘러앉아 까먹는 감자의 맛은 몽환에 가깝습니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이면 풀어줬던 소떼를 찾아서 자기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석양에 울리는 풍경소리는 지금도 들려오는 아련한 서정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무리지어 다니던 소떼에서 이탈하여 다른 마을의 소떼를 따라 가버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감자묻이의 낭만은 눈물콧물로 변하고,

서슬퍼런 아버지와 함께 밤새도록 이웃마을로 소를 찾아 다녀야 합니다.

그 당시의 소 한마리는 시골집 재산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그날 밤 안으로 소를 찾게 되지만, 간혹은 이튿날까지도 찾지 못하고 우시장에서 팔려버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솨지(송아지) 키와가 니 중학교 보낼라 캤디..마, 치와라"

이런 청천벽력의 선고를 받기도 했답니다.

이상 '그 때를 아십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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