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7) 요시노가리역사공원에 왔습니다.
JR구루메역에서 버스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이 공원은 일본에 있는 공원이지만,
역사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연산(連山)이 세부리산지(背振山地)입니다.
세부리는 옛 우리말의 셔불(서울)에서 온 이름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佐賀県史(上卷)>에 세부리산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이 나온다고 합니다.
"......'세부리'라는 지명은, 그 북록의 '사와라'군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한국어의 '서울'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서울'은 큰 집락(集落) 또는 수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와라 서쪽의 이토시마(糸島)군은 <위지왜인전>의 '伊都國'의 땅인데,
<筑前国風土記>의 일문에 의하면 그 県主는 '아메노히보코(天日槍)'의 자손이라고 한다.
'히보코'는 신라에서 귀화(도래)했다고 전해지는 사람인데 그 자손이 여러 지방으로 퍼졌다.
세부리산중에 시라키(白木=新羅)라고 하는 집락이 있다.
북규슈해안에 이주한 대륙이민이 일찌기 세부리산중에 정착번영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김달수씨의 <일본 속의 조선문화(11권)>에 인용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세부리산지에서 아리아케해로 흘러드는 강의 선상지에 25헥타르에 이르는 초대형 규모의
선사(야요이)시대 환호취락유적이 발견된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의 일입니다.
망루와 목책유적이 발견되었고,
창고로 보이는 건물터와 토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000여기가 넘는 옹관묘가 집중출토되었으며,
300여체의 남녀노소 인골이 발굴되었습니다.
인종학적 분석결과 혼혈의 흔적이 전혀 없는 순수 한반도 혈통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인골들 중에는 목이 달아난 인골과 머리에 돌화살촉이 박힌 인골도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원주민 즉 죠몬인(신석기인)과의 전투의 흔적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에 전시된 우리 조상의 유물들을 바라보며 생각이 깊어갑니다.
복원한 망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시공을 넘나들어 보지만, 진실은 잡히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맙니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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