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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설국(初夏雪國)

by 깊은 강 흐르듯이 2021. 4. 28.

대구 달성 옥포 이팝나무군락지에는 초여름 눈이 내렸습니다.

왕가의 꽃도 하늘의 재촉은 피할 수 없었는지, 다른 해보다 열흘 정도 일찍 만개했습니다.

이곳 이팝나무군락지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코로나에다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니 이 아름다운 광경을 봐주는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요 몇 년 사이에 정비도 많이 해놓았습니다. 스토리발굴도 꽤나 했고요...

산책로도 정비를 잘 해 놔서 보드라운 흙길을 맨발로 걸어도 좋겠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금방이라도 쌀밥이 입안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정자와 벤치 등 휴게시설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요,

요런 히한한 포토존도 있네요ㅛㅛ

밥그릇에 이밥(쌀밥) 담긴 거 보니 생일인 줄 알겠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팝나무의 원산지는 한국.중국.일본으로 되어 있는데요, 일본에는 자생지가 많지 않아 아주 진귀한 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혼슈의 기후현, 시고쿠섬의 아이치현, 그리고 대마도 정도에만 자생지가 발견되고요,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자생군락지가 대마도입니다. 대마도에서도 한국쪽에 가까운 와니우라(한국전망대가 있는 곳)에서는 매년 이팝축제(히토쓰바타고마쓰리)가 열리는데요,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열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요, 일본의 이 세 지역 모두가 우리나라 역사 인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기후는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영웅이었던 다케다 신겐의 고향으로 그의 선조가 신라사부로(新羅三郞)이고요, 아이치(愛知)는 정유재란 때 강항선생이 포로가 되어 압송되어 갔던 곳이기도 하지요. 강항선생은 유배지에서 일본 유학자들의 간청에 못이겨 그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요, 그 때 교재로 쓰기 위해 저술한 책이 <강항휘초>이며 지금까지도 천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며, 선생의 제자가 되었던 하야시 라잔은 에도막부 초대에서 4대 쇼군까지 시강(侍講)을 맡아 조선성리학이 에도막부의 정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임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참으로 우울한 일입니다. 아이치현의 오슈(大洲)에는 강항선생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마도는 너무 잘들 아시다시피, 신라 충신 박제상, 백제 학자 왕인, 조선말의 애국자 최익현선생의 정신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특히 와니우라(鰐浦)는 '와니(王仁)이 상륙했던 포구'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왕인박사의 비석까지 세워져 있으니까요. 이 인물들이 이팝나무 씨를 가져갔을 리는 만무하지만 인연이란 것이 참 희한하기는 하지 않나요? 한결같이 붉은 충신들의 넋이 이국땅에서 새하얀 이팝꽃으로 피어나다니...

실내에서의 집회는 그렇다 해도 야외로 바람 쇠러 나갈 양이면 초여름의 설국, 옥포로 이팝꽃 구경 오세요. 참꽃 보러 산꼭대기 가기가 힘드신 분도 이곳은 평지 중에도 평지라서 아주 편안하게 쉬엄쉬엄 구경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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